명랑한 가족 영화인 줄 알고 선택했던 <고속도로 가족>.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진한 여운이 가시지 않습니다.
1. <고속도로 가족> 소개
감독 : 이상문
장르 : 가족, 드라마
개봉 : 2022년 11월 2일, 넷플릭스에 상영 중
상영시간 : 128분
출연 : 라미란 (엄영선 역), 정일우 (장기우 역), 김슬기 (안지숙 역), 백현진 (안도환 역), 아역 서이수 (장은이 역), 아역 박다온 (장택 역)
2. 사람들이 잠시 머물다 가는 휴게소, 이곳이 삶의 터전인 가족.
모든 편의 시설이 다 갖춰진 휴게소는 많은 사람들이 재충전을 위해 잠시 머물다 가는 곳입니다. 그곳에서는 모든 사람들은 한 번씩만 보고 다시는 볼 일이 없는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입니다. 이 영화는 이런 휴게소가 삶의 터전인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기우'와 가족들은 휴게소 여기저기를 유랑하며 그곳의 편의 시설을 이용하고, 밤에는 텐트를 치고 잠을 잡니다. 다시는 볼일이 없는 사람들에게 지갑을 잃어버려서 기름을 못 넣으니 2만 원씩만 빌려 달라고 사기를 치고 식당에서 휴게소 음식들로 배를 채웁니다. 잘 때 바닥에 등이 배기고 화장실에서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씻어야 하고 텐트를 철거하라는 직원의 눈치를 봐야 하지만 이 가족은 명랑합니다. 한밤에 음악을 틀어 놓고 춤을 추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늘 웃습니다. 많은 것이 결핍된 삶이지만 가장인 '기우'는 애써 외면하며 현재의 삶에 안주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딸 '은이'가 아빠'기우'에게 학교를 가서 글을 배우고 싶다 말하지만 '기우'는 본인이 다 해 봤는데 별로였다고 대답합니다. '은이'는 본인이 직접 다 해보고 별로라고 말하고 싶다고 하지만 '기우'는 농담으로 넘깁니다. 마음 아픈 장면이었습니다. 어른들의 무책임함 때문에 아이들이 받아야 하는 교육을 받지 못하고 일종의 학대를 당하고 있었지만 아이에게는 아빠를 거역할 힘이 없습니다. 힘이 없는 아이들이 유일하게 의지하고 따를 곳이 아빠와 엄마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기우'는 여느 때와 같이 사람들에게 2만 원만 빌려 달라고 하고 있었고, '영선'에게도 같은 수법으로 다가갔습니다. '영선'은 아이들 (은이와 택)을 보고 좋은 마음으로 2만 원에 5만 원까지 더해서 총 7만 원을 이들 가족에게 줍니다.
그날 이후 '영선'은 또 한 번 다른 휴게소에서 이들을 만나게 되고,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이런 생활을 하는 '기우'가 괘씸해서 경찰에 신고를 해버립니다. 이후 이들의 삶은 많이 바뀌게 됩니다.
'기우'는 경찰서에 잡혀 들어가고, '영선'은 남은 '지숙'과 아이들을 남편과 운영하는 중고 가구점에 데리고 와서 며칠 묵게 합니다. 하지만 '기우'는 정신병이 있어 보입니다. 2만 원씩 빌려가며 하루하루를 이어나가던 '기우'가 병원에 갈 엄두도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유치장에서 탈옥했고, 그 이후 정신병이 빠르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면서도 연신 가족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당연합니다. 그에게도 마음 의지할 곳은 그가 만든 가족뿐이었으니까 말입니다. 가족을 다시 만나기 위해 밤에 몰래 '지숙'이 있는 중고가구점을 찾았지만 이제 조금 사람답게 살기 시작한 '지숙'은 '기우'를 밀어냅니다. 이후 '기우'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충격과 스트레스 때문인지 정신병 증세가 더 심해져 여기저기에서 무전취식을 하고 난동을 부리며 살아갑니다.
3. 가족이라는 이름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
가족이라는 그 무겁고 진지한 의미 때문에 내 가족이 내 인생을 힘들게 몰고 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쉽게 그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해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친한 친구와 우정을 손절하는 것도 힘든 일인데 아무리 못난 가족이라도 인연을 끊고 돌아서는 것은 얼마나 더 마음이 찢어지는 일이겠습니까, 그 마음 찢어짐 때문에 본인의 인생을 희생하며 끝까지 가족을 지키려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임신까지 한 '지숙'은 병원에도 못 가보고 '은이'는 학교를 갈 나이가 한참 지났는데도 학교 문턱에도 못 가봤습니다. 그래도 '가족'이기에 이들은 늘 함께 해야 했고 어려운 상황을 그냥 같이 보내며 지나왔을 것입니다. 어찌 보면 아빠 때문에 아이들이 그런 길바닥 인생을 살고 있는데도 끝까지 아빠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아이들을 보며 그냥 눈물이 났습니다.
'영선'의 도움으로 '지숙'은 산부인과에도 가고 '은이'는 학교에도 가봅니다. 내 가족이 채워주지 못한 아주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들을 남이 해결해 줍니다. 가족보다도 더 책임감을 느끼고 돌봐줍니다.
늘 '기우'의 말만 듣고 따랐던 '지숙'이 '기우'에게 제발 가 달라고 빌 때 잘 한 결정이라고 안심이 되면서도 가족을 마음에서 떼어 내는 '지숙'의 고통이 그대로 전달되어 제 마음도 찢어지게 아팠습니다. 너무 못나고 잘 못된 아빠 '기우'이지만 그에게도 전부였던 가족이 그와 인연을 끊어내려 할 때 감당해야 하는 기우의 처참한 마음도 이해가 되어 눈물이 계속 났습니다.
혹시 현실에서 비슷한 상황에 있지만 가족과 인연을 끊는 것이 마음이 찢어지고 무너져서 잘못된 가족과 계속 어려운 인생을 맴돌고 있는 사람이 이 영화를 본다면 힘들어도 '지숙'처럼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영화가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4. 가족이라는 의미
이 영화를 명랑하게 시작했지만 무겁게 끝나는 영화입니다. 아들을 잃은 '영선'과 '도환'은 '지숙'과 아이들을 도와주고 나중에는 그들과 함께 살기로 마음먹습니다. '영선'과 '도환'의 결핍을 '지숙'과 아이들이 채워주고, '지숙'과 아이들의 결핍을 '영선'과 '도환'이 채워줍니다. 그리고 시간을 들여 서로 가까워지고 서로를 아껴주며 서로의 안전과 안녕에 대해서 책임감을 가지게 됩니다. 진짜 가족은 아니더라도 진짜 가족이 해야 하는 역할을 서로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그 역할 안에서 안정감과 사랑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영화의 결말은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아닙니다. 마치 우리의 삶처럼 그냥 또 마련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숙'과 아이들은 '기우'와 함께 했을 때도 행복했을 것이고, '영선'과 '도환'과 함께 하는 지금도 행복하리라 생각합니다.
5. 감상평
이 작품에서 '기우'역을 한 정일우 배우의 연기가 돋보였습니다. 그 외 모든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해서 그런지 그들의 감정선을 계속 따라가며 완전히 푹 빠져서 작품을 봤습니다. 또한 훌륭한 영상미도 영화를 보는 기쁨 중 하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