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저의 인생작품이며 전도연 배우에게 사랑에 빠지게 된 계기가 됐었던 이창동 감독의 작품 <밀양>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 이창동 감독의 <밀양>
개봉 : 2007년 5월 23일
감독 : 이창동
장르 : 드라마
러닝타임 : 141분
원작 : 소설 <벌레이야기>
출연
- 전도연 (이신애 역)
- 송강호 (김종찬 역)
2. 극한의 슬픔
이 영화는 어떤 전형적인 기승전결이 뚜렷한 영화와는 조금 다른 서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애'는 죽은 남편의 고향 밀양에서 아들과 새 출발을 하려 합니다. 그러다 그 동네 사람에게 아들을 유괴당하고 그녀의 가녀리지만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결국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됩니다. '신애'아들의 죽음을 보여 줄 때 카메라 앵글은 멀리 떨어져서 그 상황을 그냥 보여 줍니다. 어떤 극적인 연출을 하지 않고 그 상황들을 담백하게 보여줌으로써 주인공 아들의 유괴와 죽음 자체가 영화에서 하고자 하는 주된 이야기가 아님을 암시합니다.
영화는 그 후 극한의 슬픔 속에 남겨져 남은 생을 살아내야 하는 '신애'의 하루하루를 쫓으며 꾀나 자세히, 사실적으로 그녀의 감정의 흐름을 보여줍니다. 하루아침에 말도 안 되는 슬픔 속에 갇힌 '신애'는 죽지 못했기에 자꾸 찾아오는 의미 없는 날들을 맞이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뒤에서 늘 조용히 그녀를 돕는 '종찬'을 통해 잔잔한 사랑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3. 그녀가 택한 방법, 종교 기독교
'신애'는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기보다는 더 이상 미치지 않고 살기 위해 노력한 수단으로 종교를 택합니다. 인간이 종교를 갖는 이유는 많습니다. 그중 '신애'처럼 정처 없이 미쳐 날뛰는 하루하루의 감정에 평안을 찾으려 '신'이라는 존재에 내 감정을 내 던지고 의지하며 종교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신애'도 교회를 다니며 마음에 평안을 찾는가 싶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 '신애'는 기독교 교리 대로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용서'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리고 교도소를 찾아가 살인자를 만나지만 교도소에서 기도를 하고 하나님께 이미 용서를 받았다는 살인자의 얼굴은 평온해 보입니다. 자신이 용서한 적이 없는데 자신이 믿는 신이 그 살인자를 용서했다고 합니다. 자신은 아직도 찢어진 마음이 아물지 않아 아프고 힘든데 신께 먼저 용서받은 살인자는 어떻게 자신보다 더 평화로울 수 있을까요? 그 후 '신애'는 자신이 잠깐 의지 했었던 절대 적인 존재와 종교활동에 배신감과 분노를 느끼게 됩니다. 믿었던 하나님을 원망하며 부흥회에서 '거짓말이야'라는 노래를 틀어 방해를 하고, '강장로'를 유혹하기도 합니다. 자신에게 교회를 소개해준 '김집사'의 남편 '강장로'를 유혹할 때 '신애'는 보란들이 하늘을 향해 비웃음을 날립니다. 영화는 종교나 기독교자체를 비판한다기보다는 하남님을 믿는답시고 종교활동을 하며 본인들은 하나님께 구원받는 존재들이라고 고상한 척하는 사람들의 모순적인 행동들을 비판하는 것 같습니다.
4. 슬픔은 사랑으로
시간이 걸리지만 슬픔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것은 사람, 그리고 사랑이 아닐까요? 가까이 있지만 늘 몇 발자국 떨어져 '신애'의 곁을 맴돌며 따뜻한 손을 내밀어 주는 '종찬'은 '신애'와 어떤 관계로 발전하거나 그녀의 삶에 크게 개입하지 않았지만 영화 속에서 그녀 곁에 존재합니다. 자해를 하고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며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못하는 '신애'를 '종찬'은 말리거나 바로 잡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지켜보고 그녀의 눈이 닿는 곳에 있어 줄 뿐입니다. '신애'가 혼자 머리를 자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종찬'은 조용히 거울을 들어줍니다. 그리고 그녀의 집 마당에 조용히 내리쬐는 햇볕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늘 마당에 찾아오지만 햇볕은 존재감도 없고 시끄럽지 않아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런 내리쬐는 햇볕 덕분에 포근하고 따뜻한 하루를 보낼 수가 있습니다. '신애'는 그런 비밀스럽고 조용한 햇볕 같은 '종찬'덕분에 옅은 미소를 띨 수 있지 않았을까요? 우리에게도 늘 조용히 우리 곁에 있어주는 소중한 사람들이 분명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5. 감상평
이 영화만큼 슬픔과 용서 그리고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감정들을 사실적으로 잘 묘사한 영화가 또 있을까요? 이 영화에서는 카메라 앵글조차 영화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모든 감정들에 개입하지 않고 그저 멀리서 '신애'의 모습을 바라보며 담아낼 뿐입니다. 그렇지만 긴 상영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신애'를 바라보며 세심하게 변화하는 감정선들이 고스란히 눈을 통해 마음으로 전해오기 때문입니다. 몇 번을 다시 봐도 마음 저리고 애틋한 영화 <밀양>입니다.